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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그 번호는 저장하지 마세요.”

문학

by 넌센스 2025. 5. 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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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44세.
도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남자.
어릴 적 꿈은 사진작가였지만, 지금은 매일 라떼에 그림을 그리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손님은 적고, 음악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검정 바지에 하늘색 블라우스, 말끔한 단발머리.
뭔가 단정하지만 어딘지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카페라떼 하나요. 포장 안 해도 돼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선명했다.

재현은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그녀는 매일 오후 3시 15분쯤 와서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라떼를 마시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 날이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사진에 관심 있으세요? 사진 모임을 하려고 해서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그녀는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제 번호는… 저장하지 마세요. 그냥 이 모임만 함께 해요.”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재현은 묻지 않았다.


 매주 화요일, 함께 걷는 사람

사진 모임은 이름만 그럴듯한 것이었다.
실은 재현과 그녀, 두 사람뿐이었다.
그들은 오래된 골목을 찍고, 공원에서 새를 찍고, 서로를 찍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서로의 인생을 꺼냈다.

그녀의 이름은 김수연, 42세.
독립 번역가. 가족은 없다.
대화는 짧았지만, 깊었다.
특히 눈으로 나누는 말이 많았다.

어느 날 재현이 물었다.

“수연 씨는 왜 번호를 저장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알려줄게요.
언젠가는… 내가 먼저 연락할게요.”

그날 저녁, 그녀가 처음으로 먼저 사진을 찍어 재현에게 보냈다.
사진에는 재현의 뒷모습과 그 옆의 가을 은행나무가 담겨 있었다.


갑작스런 침묵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수연은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전화는 없었다.
재현은 수없이 망설이다,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멍해졌다.
카페에 앉은 그녀의 자리는 텅 빈 채 햇빛만 내려앉았다.


다시, 5개월 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재현은 그녀와 걷던 공원, 골목, 미술관을 매주 걸었다.

그리고 5개월 후.
카페 우편함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손글씨. 그리고, 그 번호.

“저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번호를 저장하지 않아줘서… 더더욱 감사해요.
제 이름은 사실 김수연이 아니에요.
저는 말기 암 환자였고, 치료를 거부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건, 당신 덕분이었어요.
저는 매주 죽어가고 있었지만,
당신과 함께 걷는 시간만은 살고 있었어요.”

재현은 손을 떨며 편지를 읽었다.
봉투 안에는 마지막으로 그녀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카페 창가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의 모습.
그리고 사진 뒷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제,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땐 내 번호를 꼭 저장해주세요.”


에필로그

그는 매일 3시 15분이 되면 그녀의 자리에 라떼를 놓는다.


그리고 가끔은 그 사진을 꺼내 본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그의 일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준 계절, 그녀가 남긴 순간들은
그의 삶을 조용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언젠가.
그 번호가 다시 울리기를…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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